기사 메일전송
‘한 지붕 두 가족’ 한 궐리사 두 유도회 - 공씨 집안, 성균관 유도회에 “너 나가 !”
  • 기사등록 2012-07-30 13:55:25
기사수정

【오산인터넷뉴스】이영주 기자 = 공자(孔子. BC 551 ~ BC 479).

 

유가(儒家)의 시조이며 이름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

 

 노(魯)나라에서 태어나 정치를 담당하다 노년에는 제자 교육과 고전 편찬에 종사했다.

 

수천 년 전 인물이지만 그의 가르침은 현대인에게 교훈과 지표가 된다.

 

조선시대에는 그를 기리기 위한 사당도 만들었는데 충청도의 이산(尼山)과 경기도 수원(水原-당시 행정구역상 오산시는 수원군이었다)에 있다.

 

▲ 궐리사 내 공자 석상. 양옆으로 공자의 제자 석상도 보인다.

 

공자의 출생지가 중국 산동성(山東省) 곡부현(曲阜縣) 궐리(闕里)이므로 명칭은 궐리사라고 지었다. 이산의 궐리사는 유생들이 건립했다.

 

수원(현재 오산시)의 궐리사는 공자의 후손인 공씨가 우리나라에 건너와 처음으로 정착한 곳이 수원이므로 정조 16년(1792) 10월 정조의 명으로 이듬해 동왕 17년(1793) 5월 완공됐다.

 

지금도 봄·가을로 석전대제(釋奠大祭. 공자를 모신 사당인 문묘에 지내는 제사)를 올리고 매월 보름 회원들을 중심으로 소규모 제사를 지낸다.

 

 

이러한 역사를 가진 궐리사는 지역의 문화재로, 유교의 명맥을 잇는 사당으로 가치를 지닌다.


 

▲ 궐리사 모습.

 

그런데 이곳을 둘러싸고 내분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하나의 궐리사를 두고 두 유도회(정식명칭은 ‘성균관유도회총본부’. 인의예지신을 근간으로 윤리도의정신 함양, 수제치평의 대도 선포 실천을 목적에 뒀다. 유자의 총림이며 성균관과 지방향교 및 성균관대학교의 발전 사업과 교육, 교화, 학술 등을 경영한다)가 자리하는 것이다.

 

유도회는 행정구역이나 향교 단위로 ‘한 곳만’ 생성되는 것이 불문율이다.

 

그러나 오산은 경기도에서 유일하게 한 행정구역 내에 두 개의 유도회(성균관유도회 오산지부, 성균관유도회 화성궐리사지부)가 존재한다.

 

당초 함께 세웠던 성균관 유도회 회원을 공씨 후손들이 밀어내고 궐리사를 움켜쥐었기 때문이다.

 

▲ 궐리사 내 비석.

 

원인은 ‘돈의 사용권’이다.

 

지각 있는 유도회원들이 ‘법인 등록’을 외치고 있으나 공씨 집안의 독주(獨走)로 갈등의 골은 깊어만 지고 있다.

 

30일 성균관유도회 오산시부와 성균관유도회 화성권리사지부, 성균관 유도회 경기도본부 등에 따르면 수원군 시절 향교는 1곳뿐이었다.

 

화성시 남양쪽에 현(남양·송산·서신·마도·팔탄·반월·매송면 등 담당으로 알려짐)이 있었고 평택시 진위면에도 향교가 있었다.

 

앞서 언급했듯 향교는 행정구역당 ‘1곳’이며 유도회 또한 이 규칙을 따른다.

 

다시 궐리사 창립 초기로 돌아와서, 정조대왕은 공씨 자손이 사는 오산에 사당을 짓도록 명하고 만여 평의 산지도 내렸다.

 

이름난 충신도 살고 있었다.

 

▲ 궐리사 안내도.

 

고종 8년 대원군 집권 시 서원철폐령이 내려져 궐리사도 헐리게 된다.

 

당시 전국 47곳의 서원만이 남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사당인 궐리사를 서원으로 오판해 없어지게 된 것이다.

 

대원군이 물러나 죽고 고종 말년 한일합병(1910) 전 지역 내 ‘궐리사를 다시 세우고 싶다’는 선비들이 나타났다.

 

합병 전이지만 이미 실권을 거머쥔 일본인에 대항해 민족의 정신적 뿌리를 찾고 싶은 의지로 해석할 수도 있다.

 

▲ 궐리사 입구 공적비. 차도 옆에 위치한다.

 

철폐 후 뒤숭숭한 나라 분위기까지 합세해 궐리사는 사람도 찾지 않고 제사도 지내지 않으며 돈도 없는 곳으로 전락해버린 상황이었다.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은 선비들은 단을 만들어 제사를 지냈다.

 

부속 건물도 없는 작은 규모였다.

 

합병 중 (선비들은)중앙에 궐리사 복구를 신청했으나 묵인 당한다.

 

1925년 책임자 현규동 씨와 지방 선비들이 주동해 궐리사 복구를 위한 돈을 걷기로 하고 1926년 시행에 나섰다.

 

근방을 찾아다니며 약 269명에게 돈을 걷었다. 2·5·30·13원 등 다양한 액수가 기부됐다.

 

오산에서 용인, 봉담, 동탄, 송탄에서 충청남도 예산까지 폭넓은 지역에서 돈을 내놓았다.

 

▲ 궐리사 입구.

 

궐리사를 되살리겠다는 일념 하에서였다.

 

기부한 사람들의 명부는 1928년 10월 작성돼 성균관유도회 오산지부에서 보관하고 있다.

 

모인 돈으로는 임대료를 마련할 밭을 구입할 수 있었고 봄·가을로 제사를 지내게 됐다.

 

해방 후 유학자 김창석 씨는 성균관 중심으로 유림을 단합하는 단체를 만든다.

 

근래 오산에 유도회가 정착하게 된 것은 1992년경이었다.

 

궐리사 총무였던 고 공신택 씨가 최원빈 회장(현 성균관유도회 오산지부 회장)에게 직책을 가지고 궐리사 갱생을 청했다.

 

최 회장은 서울대 법대 출신에 읍장을 지냈다.

 

최 회장은 지인 중심으로 30명을 물색해 유도회를 조직했다.

 

창립 멤버격인 공신택 씨와 최원빈 회장은 당시 유도회의 부회장을 맡고 회장은 지역 내 존경 받는 인물로 추대했다.

 

▲ 궐리사.

 

몇 년 후 초대 회장이 자리를 고사하고 공신택 씨가 2대 회장이 된다.

 

1995년 총회에서 공 회장은 총무와 담합해 독단으로 규·회칙에 없는 행동을 하게 된다.

 

변칙적 회칙 운용도 서슴치 않았다.

 

최원빈 씨의 제지를 공 회장 측은 반기지 않았다.

 

최 회장은 스스로 유도회를 나왔다.

 

그 후 성균관유도회 오산지부는 궐리사에서도 쫓겨난다.

 

최 회장이 유도회와 궐리사의 임원을 겸직시켰는데 황대근 회장 시절인 어느날 사무실에 출근하니 공씨 일가가 간판과 책상을 빼냈다.

 

임원 선출과 석전대제에서도 성균관 유도회는 공씨 일가에게 밀려났다.

 

궐리사를 독점한 공씨 일가는 ‘성균관유도회 화성궐리사지부’를 신설한다.

 

▲ 성균관유도회 오산지부 간판. 현재 궐동 대우아파트

부근에 위치한다.

 

이를 위해 중앙성균관에 내규를 고치도록 로비 했다는 후문도 있다.

 

여기에 설득력을 더해주는 것은 화성궐리사 유도회 정식 인가가 2011년 1월에 났고 중앙 유도회 정관은 그 전해인 2010년에 바뀌었다는 것이다.

 

 

성균관 유도회 경기도 본부는 “(총본부의)승인만 나면 유도회가 3~4개 있어도 괜찮다”며 “전에는 시·군 내지 향교 단위로 유도회가 하나씩만 있어야 했지만 유림들 인성교육과 조직원 확대를 위해 바꼈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게 싸워서 갈라지기 때문”이라며 “욕심이 너무 세다. 조금씩 양보해야 하는데 같은 구역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해관계 때문에 그리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원빈 성균관유도회 오산지부 회장은 “오산의 유교 유림은 단합해야 한다”며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3~4명씩이라도 모여 타협해 전과 같이 합심해 운영하자”고 말했다.

 

▲ 성균관유도회 오산지부 문 앞에 붙은 표지.

 

이어 “후배들이 잘 운영해 융합되길 진심으로 바란다”며 “(궐리사 유도회와)같이 하고 싶은 심정이다. 자리 욕심은 전혀 없다”고 토로했다.

 

공준식 성균관유도회 화성궐리사지부 회장은  "(오산지부와) 합치면 좋다"며 "떨어져 있는 모양새는 좋지 않다"고 말했다.

 

또 "유도회에서 갈라진 게 아니다"며 "본인들(오산지부)이 떨어져 나간 거지 이유가 있어 갈라선 게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어 “조금 있으면 법인화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유도회 수장인)도유사는 공씨가 하지 않는다. 매년 계획서를 만들어 문화재위원회 제출 통과한 후 시행하고 있다. 매년 말 자체 감사 2명이 감사를 한다. 장부 그대로 세무사를 고용해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궐리사는 자체 성현관련 교육으로 연400만원의 사회단체 보조금을 받고 있으며 시설물 보수 시 도·시비 7:3을 지원 받는다.

0
기사수정
  • 기사등록 2012-07-30 13:55:25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현재의견(총 3 개)
  • 오호2012-07-31 16:35:43

    오호! 통제로다.공씨?와 유도회의 갈림길은 보기가 좋지 않아유.ㅉㅉ

  • 선비2012-07-30 16:17:54

    공자가 공씨라 ㅎㅎ 공씨들이 텃세를 부리는 군요 하여간 ㅠㅠ
    오산 인터넷뉴스 좋은 기사 감사 합니다.

  • 오산인2012-07-30 15:19:27


    참 부끄러운 일이네요..하루빨리 좋은 모습 기대 합니다.
    빨리 법인화 되었으면 좋겠네요...서로 양보 하여 오산의 얼굴인 궐리사를 살립시다..

최근 많이 본 기사더보기
뉴스제보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