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hong 기자
【오산인터넷뉴스】이영주 기자 = 한국의 호랑이는 중국의 동북호랑이(만주호랑이)나 시베리아 호랑이에 비해 용맹하기로 유명하다.
한국산 호랑이는 1915~1942년 일제강점기 때 해로운 짐승을 없앤다는 이유로 97마리가 남획됐고, 남한은 1921년 경북 경주시 대덕산에서 사살된 일이 마지막 공식기록이라고 전한다.
이와 비슷한 시기 오산에 존재했던 호랑이 이야기를 소개한다.
▲ 불과 70~80년 전까지만 해도 독산(禿山)을 누비던 한국 호랑이.
■ 독산(禿山)의 호랑이 이야기
불과 70~80년 전까지만 해도 산성이 존재했던 독산에 호랑이가 있었다고 한다.
다음은 제보자가 각각 아버지와 형님들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라고 한다.
일제강점기는 사람들이 땔감으로 나무를 하지 못하도록 순사들이 감시를 했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난방이나 음식을 익히기 위한 땔감을 마련하고자 감시를 피해 밤에 몰래 솔가지나 나뭇잎을 구해야 했다.
제보자 아버지도 나무를 하기 위해 밤에 산에 올랐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고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물이 하나 있는데 이 우물은 아무리 추운 날이라도 절대 어는 일이 없으며 오히려 물이 따뜻해 언 손을 녹일 정도였다.
우물을 지나오는데 어디서 불이 번쩍 번쩍했다.
눈이 아주 큰 짐승이었다.
그건 바로 호랑이였다.
또 한 제보자 형님들의 호랑이 이야기이다.
여름철인데 비가 와 논에 수문을 열어놓았다.
제보자의 두 형은 논의 수문을 막으려 밤중에 논으로 향했다.
예전에는 그 논 근처에 국수버섯이 잔디처럼 쫙 깔려있던 곳이 있었다.
그 곳에 호랑이가 버들강아지 나무 밑에서 후루룩 털면서 일어나더란다.
두 형은 삼십육계 줄행랑을 쳤다.
이렇게 독산에서 호랑이가 출몰했던 것은 70~80년 전이다.
왜정 때 일본인들이 철저하게 나무를 보호해 그때만 해도 나무가 빼곡하게 들어 서 있었다고 제보자는 기억하고 있다.
■ 대호밭의 전설
오랜 옛날 궁터 건너는 석산굴에 숲이 우거져 호랑이가 출몰했다고 전한다.
마을에 우물이 두 곳 있는데, 우물은 호랑이의 두 눈이고 묘지가 위치한 곳은 호랑이의 입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예전에 이 마을에 연안 김씨가 많이 모여 살았으며 그 때 진사를 지냈던 사람이 효심이 지극해 부모가 돌아가시자 3년을 지극정성으로 시묘했다.
어느 그믐날 밤에 부모의 묘소를 찾아 뵙고 돌아오는데 날이 너무 어두워 앞이 보이지 않아 걷기도 힘들었다.
그 때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 불을 밝혀줘 무사히 집에 돌아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