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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에 전하는 신비한 옛 이야기들(34) - 이영주 기자, 구비전승41회 지명유래-대원동①
  • 기사등록 2013-12-14 12:4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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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인터넷뉴스】오산시 대원동은 오산역과 버스터미널 등이 있어 교통의 요지이다.

 

1905년 오산역이 영업을 시작하면서부터 오산뿐만 아니라 인접한 용인, 안성, 발안 등으로 통하는 교통의 중심지가 됐다.

 

오산시 대원동 지명유래 첫 번째 이야기를 전한다.

 

 

■ 대원동

대원동은 1789년까지 청호면(靑好面)이었으며 1899년(광무 3)은 청호면(晴湖面), 1914년 4월1일까지 일제 초기에도 같은 면에 속했다.

 

2·3동과 4동 일부는 1915년 10월1일 수원군 오산면으로, 1960년 1월1일에는 화성군 오산읍으로, 1989년 오산시로 승격하면서 밀머리·오산4리 우촌말·역말·당말·원동을 합쳐 오산역이 있는 마을이라 역촌동으로 동명을 정했다.

 

그러다 역촌의 이미지가 좋지 않다는 주민의 의사를 반영해 1991년 8월13일 시 조례 253호에 의해 원래 이름 원동을 확대해 ‘큰 원동’이라는 뜻의 대원동으로 동명을 개칭했다.

 

1995년 4월20일 대통령령 제14629호에 의한 시군자치구의 관할 규정에 의해 관할구역 변경에 관한 행정구역이 조정돼 당시 진위면의 고현동·청호동·갈곶동이 편입돼 39통 166반으로 편성됐다.

 

▲ 고현동은 마을 뒤 높은 고현산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이름 붙여졌다.

 

(1) 고현동

갈곶동, 청호동과 마찬가지로 1995년 4월20일자로 당시 평택군 진위면에서 오산시로 행정구역이 변경됐으며 오산시의 동남쪽 맨 끝 동네다.

 

마을 뒤(남쪽) 높은 산(고현산)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고현동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우촌을 병합해 고현이라 불렀다.

 

고현동에는 높은재, 흙구덩 등의 자연 마을 이름이 등장하는데 높은재는 천안 전씨와 전주 이씨 사람들이 들어와 정착해 마을을 형성했으며 흙구덩은 단양 우씨가 처음 정착해 살았던 것으로 전해온다.

 

* 높은재

마을 뒷산 고현산으로 오르는 고개길에 위치한 마을이라 해서 높은재라 부른다.

 

고현 1동으로 천안 전씨의 집성촌이다.

 

일대에서 가장 높은 지역에 있는 마을이다.

 

일설에 따르면 진위면 마산(馬山) 원리 부근에 살던 형제가 결혼해 세간을 나와서 형은 높은재에서, 아우는 우촌에서 살게 돼 지금도 형제마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고현동은 1995년 4월20일자로 당시 평택군 진위면에서 오산시로 행정구역이 변경됐으며 오산시의 동남쪽 맨 끝 동네다.

 

* 우촌

고현 2동의 다른 이름으로 예전에 우씨가 정착해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일설에는 역말 우측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우촌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한다.

 

원래 오산의 우촌은 수원 우촌이라고 부르고 혼란을 피하기 위해 그냥 우촌이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이 마을과 부근 지역 사람들은 우촌을 흙구덩마을이라고도 부른다.

 

이 마을이 하천변 진흙구덩이이에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 새터

현재 LG전자 공장이 들어선 곳에 마을이 있었는데 새로 생겨난 마을이라는 뜻에서 새터말이라고 불렀다 전한다.

 

현재 마을은 모두 없어졌다.

 

이외 높은재 고개, 고분다리, 갈래들, 뒷산, 두레우물, 서낭고개 등의 땅이름이 존재하고 있다.

 

원래 높은재 고개는 기나지고개라고도 불렀는데 고개가 높으면서 길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던 것이다.

 

그 고개 너머에 갈참나무와 돌무더기로 만들어진 성황당이 있었던 것으로 마을 사람들은 증언하고 있다.

 

한편 높은재에는 천안 전씨와 전주 이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 왔는데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의 증언에 빌면 대략 300여년 쯤 전에 이곳에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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