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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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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안민석 국회의원은 입장 밝혀라!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유가족의 단식이 25일째 이어지고, 범국민서명운동이 400만명을 훌쩍 넘어선 오늘, 새누리당-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성역없는 진상규명을 요구해온 국민의 뜻을 배신한 야합의 산물을 내놓았다.
2014-08-08 os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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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곽시장은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오산 새정치민주연합의 6.4 지방선거 당내 경선에서 불거졌던 관권선거 시비가 현실이 되어 돌아왔다. 이번 사건은 이미 예고된 참사였다. 오산 새민련은 당내 시장 경선 때부터 관권선거 문제가 불거졌다. 시 산하 6개 단체 사무국장들이 시장 경선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며, 당시 시장후보 중 한 명인 박모 후보의 문제제기가 있었던 상황이었다.
2014-07-01 os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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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진 공인회계사의 '세무칼럼 1'
과거 세금은 수탈당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일제에 36년간 나라를 빼앗긴 쓰라린 경험이 있는 우리 국민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세금은 일제가 수탈해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2014-06-27 최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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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4년을 빌려 드립니다'
대통령을 제외한 선거직 공직자는 통상 4년을 임기로 한다.
그러므로 선거에 나서는 출마자들은 유권자들에게 4년을 빌리는 것이다.
잠시 빌린 4년에 어떤 혹자(或者)는 욕심을 부려 4년을, 아니 그 이상을 넘보기 일쑤다.
때문에 그 욕심은 간혹 화(禍)를 자초하며 불미스럽게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는 사례를 우리는 종종 지켜보고 있다.
선거에 당선된 누구라도 4년 동안 무엇을 어떻게 결과물로 내놓기란 결코 쉬운..
2014-02-15 os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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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총성 없는 전쟁 '選擧'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1878.11.9~1938.3.19) 선생은 생전에 약속(約束)을 신조로 삼았다고 한다.
공천제 폐지는 정치권과 국민들에게 표방한 약속이다.
민주당은 당론으로 공천제 폐지를 결정했지만, 새누리당은 무슨 이유인지 아직까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며 침묵하고 있다.
2013-12-03 os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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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가난,임금도 구제못한다
첨단과학문명이 지배하는 21세기지만 지금도 지구촌 몇몇 원시부족들은 그들만의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이들의 삶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지천에 널린 과일을 따먹고 수렵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그들에게 문명사회의 척도로 가늠되는‘화폐’가 등장한 것이다.
2013-11-19 os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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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평생 우려먹을 '武勇談'
마라톤은 최초 42.195km 거리를 경기에 도입한 런던올림픽(1908년)부터였으며, 1924년 제8회 파리올림픽에 정식으로 채택됐다.
남자들만 참여하는 경기로 여겨져 왔으나, 1960년 이래 미국을 시작으로 여성들 참여 요구가 고조되면서 1970년대부터 여자마라톤이 여러 대회에서 인정됐다.
그러다 1984년 LA올림픽 때부터 여자마라톤이 정식종목으로 가세했다.
이윽고 출발을 알리는 신호와 함께 남녀가 어우러진 건각들 무..
2013-10-30 os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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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富國强軍이 필요한 이유
군대는 엄중한 기강과 질서가 담보된 강군으로 육성돼야 한다.
이는 아득한 삼국시대부터 수많은 외세침입으로 처절하게 유린됐던 우리의 뼈아픈 역사에서 왜 강군이 필요한지 그 이유와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경제력이 튼튼한 잘사는 나라, 철통같은 군사력이 장착된 국가.
부국강군(富國强軍),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필요충분조건이다.
2013-10-01 os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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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스물 다섯 살 청년 '오산'
때문에 오산은 독립된 시로 승격될 때까지 독자적 행정단위로 존재하지 못했다.
그러다 1990년대초 풀뿌리 민주주의 태동을 알리는 광역·기초의회가 출범하면서 정서 대립이나 생활권 불일치 등으로 불균형을 이루는 행정구역경계조정 바람이 전국에 불었다.
이에 정부는 행정구역경계조정이 필요한 지방자치단체들을 대상으로 1995년 3월21일 찬·반 주민투표에 부쳤다.
2013-09-25 os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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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오산(烏山)지명과 까마귀
오산이 처음 등장한 문헌은 1451년 개찬된 ‘고려사(高麗史) 세가권 제25’원종 1년(1261년)에 “속리대가 을유에 또 오산(烏山)에 퇴둔하였다(束里大還歸乙酉 退屯于烏山)”에 이어 1452년 편찬된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 같은 내용이 실려 약 755년 전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몇 가지 설(設)이 전하지만‘까마귀가 많았다’뜻에서 까마귀‘오(烏)’자를 딴 오산(烏山)으로 명명됐을 가능성이 ..
2013-07-29 osh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