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hong 기자 2013-03-27 18:14:21
【오산인터넷뉴스】이영주 기자 = 30년 전 한 여자와 한 남자가 있었다.
경북 영덕에서 업소 대표와 주방장으로 만난 이들은 그렇게 사랑에 빠졌고, 백발이 된 지금까지 부부의 연을 맺어왔다.
▲ 3월26일 밤 10시30분경 오산시 오산동 한 가건물에서 불이 나 주택이 전소했다.
이미 결혼을 했던 여자는 자녀 3명이 있었고, 남자는 그들을 가슴으로 품었다.
자녀 교육을 위해 오산으로 집을 옮긴 이들 가족은 알콩달콩 행복한 삶을 꾸리며 서로 아끼고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틀전 노부부가 거주하는 가건물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청천벽력같은 불행이 찾아 들었다.
3월26일 밤 10시30분이었다.
▲ 화재로 내려앉은 건물 전경. 오산소방서는 화재원인을 전기누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윤진 할아버지(75)는 텔레비젼 뒤쪽에서 갑자기 시뻘건 불꽃이 튀는 장면을 목격하고 깜짝 놀랐다.
불은 전선을 타고 창문쪽으로 삽시간에 번져갔고, 김 할아버지는 이불을 덮고 물을 뿌려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김 할아버지는 “차오는 연기에 숨이 막혀왔고 허겁지겁 뛰쳐나오니 바깥이었다”고 말했다.
이웃 주민들은 “당시 김 할아버지는 맨발에 정신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며 안타까워 했다.
그런 경황속에서 김 할아버지는 인생의 유일한 동반자로 평생을 같이 살아 온 최분순 할머니(85) 를 구하러 가야 한다며 마구 찾아 나섰단다.
다행히 최 할머니는 중풍 치료를 위해 서울에 사는 아들 내외가 며칠 전 모시고 올라가 화를 면했다.
이웃들은 한결같이 “천만다행”이라고 입을 모았다.
남편은 오래 전 부터 거동이 어려운 아내를 수발하고 있었다.
폐지를 주워 생활하며 지극정성으로 돌봤다.
식사, 대·소변, 빨래 등 집안일 모두를 남편이 손수 도맡아 했다.
▲ 타버린 방 안 모습.
아내는 몇 년 전 다리 뼈가 부러져 거동이 불편한 상태였다.
또 남편도 오토바이 사고로 한 쪽 대퇴부를 다쳐 근근히 약으로 버티고 있었다.
수십년 전 아내가 외로운 처지의 남편을 사랑으로 보듬어 줬듯이, 지금은 남편이 아내를 정성으로 보살피고 있었던 것이다.
화마가 남긴 보금자리는 검은 재가 날리고 있었다.
“김 할아버지는 주운 폐지를 고물상에 팔러 갔다”고 이웃들이 전했다.
김 할아버지는 평생 가진 재산이라곤 없어도 인복은 타고 난 것 같았다.
그를 기다리는 동안 지나는 이웃 주민들 마다 진심으로 걱정스런 얼굴로 안부를 물었다.
김 할아버지가 고물상에 넘기는 폐지는 1kg당 110원이라고 한다.
▲ 김 노인 주운 폐지를 모아 두는 곳.
한 달 내내 노구를 이끌고 모았을 폐지는 겨우 15만원 안팎이란다.
이윽고 나타난 김 할아버지는 경황이 없어 보였다.
때묻은 옷과 손에서 힘겨운 고단한 삶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그는 “어떻게든 살아보려 노력하는데 이런 재앙이 닥치니 막막하다. 정신없고 밥도 먹을 수 없다. 어제는 시청에서 잤다. 아침도 그 곳에서 먹고 왔다. 시청 공무원들이 친절하게 대해 줘 고맙다”고 말했다.
오산시무한돌봄팀은 “어제 소방서에서 당직실로 인계받았다” 며 “(김 할아버지를)기초수급자에 적용하도록 안내할 계획이며, 금명간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 할아버지에게 따뜻한 햇살, 눈부시게 빛나는 봄꽃들은 지금 먼 얘기다.
▲ 김 노인이 불에 타 주저앉은 집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하고 있다.
봄이라고 하지만 아직 날은 쌀쌀하고, 오늘 당장 김 할아버지가 작은 몸을 뉘일 곳 또한 없다.
김 할아버지는 불길에 그을린 약봉투를 뜯어 물도 없이 입에 털어 넣고 있었다.
▲ 김 노인이 복용하는 약. 불길에 그을린 약봉투가 화재 상황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